Lost in the Mountains
Hong Sang Soo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러닝타임 30분

“희망이 없는 관곈데, 가끔 보고 싶고 술도 먹고 싶다.”
“내 감정을 숨기고 질문을 너무 오래 했더니 내가 징그럽다,”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으면, 난 내 이상을 다듬어야 한다.”
“난 망했어, 난 죄도 안 짓고 망해버린 케이스야.”
“난 유명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더러운 소문의 주인공이 됐다.”
“그냥 하고 나서 이유 붙이는 거야. 아니야?”

자신의 차를 몰고 친한 언니인 진영을 만나러 전주로 간 미숙은 엄마랑 다퉈 지금은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진영의 말을 듣고 선생님이었던 상옥을 만나 모텔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 날 진영의 집에서 상옥의 시계를 보게 되고, 진영에게 상옥과의 관계를 듣게 된다. 미숙은 배신감을 느끼고, 전 남자 친구였던 명우를 전주로 불러들여 진영과 함께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고 미숙은 명우와 모텔로 들어가고 진영도 상옥을 불러 모텔로 들어간다. 아침이 되자 해장국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간 미숙과 명우는 뒤따라 들어오는 진영과 상옥을 마주하게 된다. 명우와 미숙은 밥을 먹고 못본 척을 하며 인사를 하지 않고 나가고 상옥은 미숙과 명우를 불러 세워 왜 인사를 하지 않냐고 윽박을 지른다. 명우는 고개를 숙이며 미숙 탓을 한다. 참다못한 미숙은 상옥에게 화를 내고 다시 차를 타고 돌아간다.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은 단편답게 가볍지만, 어떤 장면은 한 편의 영화보다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는, 무엇보다 재미있고 홍상수스러운 영화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 영화가 그렇듯 <첩첩산중>도 술자리와 남자와 여자가 등장하는 치정극이다. 하지만 치정을 통해 낱낱이 밝혀지는 인간성은 그리 뻔하지 않다.
영화는 술에 취한 사람들과 모텔, 외로움과 분노와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웃기지만, 특유의 적나라한 일상성에 마냥 웃기에는 씁쓸하기도 하다. 그들의 모습이 한 때 우리의 모습이거나, 지금 우리의 모습이거나,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물이 뻔뻔하고, 치졸하고, 찌질하며, 위선적이다. 그런 그들의 거리는 술을 마시거나 섹스를 할 때나 가까워지고, 잠깐 멀어졌다 싶으면 상처를 주고 자신의 자존심만을 챙기려 든다. 그들은 자신의 위선과 치졸함 불편함을 항상 외면하거나 남 탓을 하며 자신을 변호하지만, 타인에게만은 엄격하다. 카메라는 겹쳐지고 겹쳐져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첩첩산중 그 틈 사이로 자신을 더욱 들이민다.
그러자 술안줏거리로 지나갈 뿐인 썰이 여러 시점을 품은 영화―이야기가 된다. 홍상수 감독의 서사는 교훈을 전달하거나, 위선적인 자를 벌하여 통쾌함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뻔하고 대단히 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스크린 안에 인물들은 그들의 일상에 살아 숨 쉬고 있어 짧은 시간에도 다채로운 감정을 분출하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으며, 관객이 예상치 못한 반응을 한다. 그들은 문자에서 태어나 카메라-스크린을 통해 삶을 얻은 살아있는 인물들이다.
사람은 항상 자신을 중심으로 보기에 다른 관점으로 무언가를 보기란 쉽지 않다. 영화는 다른 관점으로 일상과 관계를 바라보게 한다. 홍상수의 어떤 영화를 보든 그 영화는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타성을 벗겨버리고 일상의 새로운 면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의 영화는 매일 걷던 길을 처음 걷는 길처럼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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